6년이라는 시간을 갈아 넣어 정성을 다한 가게를 정리하고, 딸이 건네준
꽃다발을 들고 걸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.
마음 한편은 홀가분했지만, 또 다른 한편은 묵직했습니다.
‘이제 아침에 출근 안 해도 된다’라는 자유로움이 있었지만, 곧바로
‘그럼 이제 뭘 해야 하지?’라는 막막함이 밀려왔습니다
처음 몇 주는 아주 좋았습니다.
늦잠도 자고, 시간에 쫓기지 않으며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하고, 오전엔 운동을
가고 오후엔 낮잠도 자고, 드라마도 몰아보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.
하루하루가 마치 오래 기다렸던 달콤한 휴가 같았습니다.
그런데 한 달쯤 지나니 어딘가 허전하고 불안한 감정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.
출근하지 않는 하루는 너무 조용했고, 누군가와 하루 종일 말 한마디도 안 나누는 날이 생기고,
문득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.
"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?" "이런 게 퇴직 후의 삶이 맞는 걸까?"
그렇게 ‘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’를 스스로 책망하는 시기가 찾아왔습니다.
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내가 , 불안했습니다.
퇴직 후의 삶은 '여유롭다'라는 이미지로만 알고 있었는데
막상 겪어보니 그런 낭만보다 텅 빈 일상 속의 허전함, 공허함이
훨씬 컸습니다. 특히 "요즘 뭐 하세요?" 누군가 툭 던진 질문에 "그냥 쉬고 있어요."라고
대답을 할 때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어쩐지 내가 뒤처지고 있는 것 같은
기분이 들었습니다.
누구는 자격증을 따고,
누구는 여행을 다니고,
누구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고,
누구는 취미 생활을 즐긴다는데
나는 왜 이러고 있지?
나는 왜 이리 못났지?
퇴직이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많은 감정을 끌고 왔습니다.
해방감, 여유, 그리고 동시에 불안, 공허함, 정체성의 흔들림.
점점 불안해졌습니다.
지금은, 조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.
어느 날, 조금씩 나의 일상을 되돌아보고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며 달라져 보기로 했습니다.
늘 누군가를 챙기고, 일에 치이고, 집안일에, 가족에, 사회적 역할에 매여 살았습니다.
그래서 내가 뭘 좋아했고, 뭘 싫어했는지, 매일을 바쁘게 살면서 놓치고 있던 어떤 일상이 나를
행복하게 하고, 어떤 순간이 위로가 되는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.
어느 날은 책을 한 권 끝까지 다 읽고,
어느 날은 필사를 해보고,
어느 날은 좋아했던 음악을 듣고,
어느 날은 수영장에 등록하여 운동을 시작하고,
어느 날은 블로그를 시작하는 유튜브를 보며 공부도 하며
그러면서 조금씩 확신이 생겼습니다.
"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조용한 시간이 사실은 나를 다시 세우는 시간일 수도 있겠구나."
꼭 돈을 버는 일만 ‘일’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.
나를 돌보는 시간도, 새로운 일상을 정리하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‘일’이라는 것을
깨닫게 되었습니다.
퇴직 후의 시간은 쉬는 게 아니라, 회복하는 시간
사회는 우리가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
퇴직 후의 삶은 그동안의 속도를 잠시 멈추고,
내가 진짜 원하는 방향을 다시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.
무언가를 해야만 가치 있는 게 아니고, 쉬는 것도, 비워 내는 것도
충분히 의미 있는 삶의 형태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.
지금 저는 하루하루 아주 천천히 살고 있습니다.
글을 쓰고, 생각을 정리하고,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도 하면서요.
생산적인 무언가를 해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.
이 시간이야 말로 그동안 너무 바빠서 들여다보지 못한 '내 마음'을
돌보는 시간입니다.
아무것도 안 해도, 괜찮습니다
퇴직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자신이 불안하고 초조하신가요?
다시 사회에 뛰어들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.
"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"
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분명히 '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'에 대한 답이
아주 조용히 찾아올 것입니다.
퇴직은 끝이 아니고, 그저 '나답게 살기 위한 시작' 일뿐입니다.
지금 이 순간,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아도 사실은 당신 삶의 가장 중요한
장면이 흘러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릅니다.
그러니 아무것도 안 해도.... 진짜 괜찮습니다.